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 (문단 편집) == 흥행 == 이 영화를 제작할 때 제작비 부족으로 금융회사에 대출을 신청했는데 이때 '''둘리의 저작권을 담보로''' 6억원을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780/read/50940791?|대출]]하는데 성공했다. 만약 영화의 흥행이 실패했다면 둘리의 저작권을 잃게 되는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었으며, 이후 흥행에 성공하자 바로 대출금부터 먼저 갚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극장 개봉 당시 최소 6억 이상은 벌었다는 뜻이 된다. 다만, 유퀴즈에서 밝힌 것을 보면 이자 등이 크게 부풀려져서 23억을 갚았다고는 하니, 원작자가 건진 수익은 크지는 않은 듯. 다만, 2차 판매 등을 감안하면 김수정은 큰 이익을 보지 못 했으나, 손해를 보지는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한 번 제작할 때 드는 비용이 너무 큰 탓에 더 제작할 여력은 어렵다고 밝히기도.]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 서울 35만 명 관객(전국 관객은 100만 명 정도로 추정)을 동원하며 상업적으로도 제법 성공을 거두었는데,[* 1990년대 중반은 경기도민들이 영화 한 편을 골라 보기 위해 강남까지 차를 몰고 가는 일이 흔했다. 리마스터링이 개봉한 2023년처럼 멀티플렉스가 갖춰진 환경이 아니었다.] 사실 처음에는 극장에서 이 작품을 상영하지 않으려 했다. 당시 다른 국산 애니메이션들이 연이어 흥행에서 참패하다 보니[* 그나마 1995년 12월에 개봉한 [[돌아온 영웅 홍길동]]은 [[서울특별시]]에서 20만명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하긴 했지만, 이 만화도 극장에서는 상영하지 못한데다 작품성 논란으로 호평은 받지 못했다.] 극장에서 아예 색안경을 끼고 보면서 상영을 기피한 것. 거기에 [[트위스터(영화)|트위스터]], [[미션 임파서블]], [[더 록(영화)|더 록]], [[이레이저]] 같은 여러 헐리우드 블럭버스터들이 줄줄이 개봉한 시기라 개봉 극장도 제대로 잡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코엑스]] C홀 의자를 1000개 가량 빌려 간신히 상영을 하기 시작했는데, 극장에서 생각한 것과 달리 뜻밖의 대박을 쳤다. 이후 연일 매진 사례를 기록하면서 성공을 거뒀다.[* 다만 [[김수정(만화가)|김수정]]은 지금도 아쉬워한다. 배급을 직접 담당하다 보니 뭐가 뭔지 몰라서... "그때 제대로 된 배급사를 잡았더라면 서울 관객 50~60만은 문제없었을 거예요!"라는 말을 했는데(아기공룡 둘리 애장판 4권 작가 인터뷰) 당시 이 정도 관객은 한국 대작 영화도 동원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문화체육부]]가 주관한 '좋은 만화영화상' 부문 대상을 수상했으며, 이후 25만 달러라는 파격적인 가격[* 2000년대 들어 한국 영화들이 수백만 달러로 수출([[올드보이(2003)|올드보이]]가 [[일본]]에 2백만 달러가 넘는 값으로 수출되었다든지)되는 일이 흔해졌지만, 당시만 해도 한국 영화 흥행작도 이 정도 값에 수출되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였다. 1990년 초반만 해도 한국 영화 수출가는 겨우 1 ~ 2만 달러(그마저도 소프트 포르노 극장에 수출된 에로틱 영화. 거기에 [[임권택]]의 [[씨받이(영화)|씨받이]]도 있다.)에 수출되던 때(1991년 영화 [[사의 찬미(영화)|사의 찬미]]가 2만 달러에 [[미국]]으로 수출된 경우가 있는데, 그 해 한국 영화 중 가장 비싸게 팔렸다고 한다.)라는 걸 생각하면 당시 [[충무로(은어)|충무로]]에서도 화제였다.]에 [[독일]]로 수출해 좋은 결과를 얻었다.[* 1998년~1999년 [[https://www.filmdienst.de/film/details/510159/dooly-der-kleine-dino|Dooly, der Kleine Dino]]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다.][* [[독일]] 개봉 후 약 3년 후에 현지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jyRoJG7Uc5E|재방송]]을 했는데, 이때 시청률이 무려 15%였다고 한다.] 얼음별 대모험의 성공을 보고 흥미를 가진 [[워너 브라더스]]가 둘리나라와 같이 50대 50으로 공동 투자를 하는 조건으로 새로운 애니메이션 제작을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1801100004001|제의]]했지만, 갑자기 터진 [[1997년 외환 위기|IMF]] 때문에 환율이 폭등했고 둘리나라 측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져 결국 무산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